[TL;DR]
- 이더리움의 EIP-7702는 EOA 지갑에 스마트 계정의 기능을 추가할 수 있게 하는 혁신적인 업그레이드로, 2025년 펙트라 업그레이드를 통해 구현될 예정이다.
- EOA 지갑에 위임 지정자를 등록하면 다중 서명, 거래 한도 설정, 자동화된 거래, 계정 복구 등 스마트 계정의 핵심 기능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으며, 여러 체인에서도 활용이 가능하다.
- 최근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가 허용되는 상황에서, EIP-7702는 기업과 기관들이 기존 주소를 유지하면서도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블록체인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1. 들어가며: 이더리움 지갑의 현재와 미래
2015년 이더리움이 출시된 이후 블록체인 생태계는 놀라운 속도로 발전해왔습니다. 디파이와 NFT 시장이 급성장했고, 블록체인 게임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자리잡았으며, 수많은 레이어 2 솔루션과 크로스체인 기술도 진화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더리움의 가장 기본적인 접점인 지갑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입니다. 대다수의 사용자들이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EOA(외부 소유 계정) 형태의 기본 지갑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기존 EOA 지갑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단일 개인키에 모든 것을 의존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마치 집의 모든 문을 하나의 열쇠로만 여는 것과 같이 매우 위험한 구조입니다. 이런 단순한 구조는 필연적으로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보안 위험입니다. 개인키가 유출되는 순간 계정 내 모든 자산이 위험해집니다. 해커는 개인키만 있으면 단 한 번의 서명으로 모든 자산을 빼낼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를 방지할 수단이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인 금융 서비스에서 당연히 제공하는 거래 한도나 의심스러운 거래에 대한 지연 실행 같은 기본적인 보안 장치조차 넣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개인키를 잃어버렸을 때입니다. 금융 서비스는 비밀번호를 잊어버려도 본인 확인을 통해 계정을 되찾을 수 있지만, EOA는 그렇지 않습니다. 개인키를 잃어버리면 수십억 원의 자산이 있어도 영영 접근할 수 없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편하게 사용하고 있는 금융에서의 필수적인 기능들을 전혀 활용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다중 서명이나 지출 한도 설정, 자동 지급, 조건부 거래처럼 스마트 컨트랙트로 구현할 수 있는 수많은 기능을 EOA에서는 쓸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기업 자금 관리나 DAO 운영 같은 복잡한 작업에서 EOA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됩니다.
2. 스마트 계정의 이해
2.1. 스마트 계정이란?
스마트 계정(Smart Account)은 기존 지갑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는 접근 방식입니다. 일반적인 EOA가 단순히 키와 주소의 쌍이라면, 스마트 계정은 스마트 컨트랙트를 활용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형태의 지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갑이 단순한 저장소를 넘어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다양한 금융 기능을 설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스마트' 지갑입니다.
스마트 계정의 핵심은 모듈식에 있습니다. 유저는 마치 레고 블록을 조립하듯 필요한 기능을 자유롭게 추가하거나 제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중 서명 기능이 필요하면 해당 모듈을 추가하고, 자동 거래가 필요하면 그에 맞는 모듈을 설치하면 됩니다.
2.2. 스마트 계정이 가져온 혁신
스마트 계정은 기존 EOA와 비교했을 때 여러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보안 모델의 변화입니다. EOA가 단일 개인키에만 의존했다면, 스마트 계정은 여러 보안 레이어를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액 거래는 단일 서명으로, 고액 거래는 반드시 다중 서명을 받도록 설정할 수 있습니다.
거래 방식도 훨씬 유연해졌습니다. EOA에서는 불가능했던 예약 거래가 가능해졌고, 특정 조건이 충족될 때만 실행되는 조건부 거래도 설정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이 거래 수수료를 대신 내주는 '후원 거래'도 가능해져, 신규 유저의 진입 장벽을 크게 낮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2.3. 실제 활용 사례
일반 소비자들은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 쓰는 공동 지갑을 만들거나, 비상시를 대비한 상속자 지정, 분실 시 복구 옵션 설정 등 다양한 기능을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생체 인증이나 하드웨어 보안 키와 같은 새로운 인증 방식과의 통합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기업과 기관의 활용 사례는 더욱 다양합니다. 기업 재무팀은 권한별로 세분화된 지갑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상적인 운영비용은 중간 관리자 승인만으로 집행하고, 대규모 자금 이동은 CFO와 이사회 승인을 필수로 설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거래 내역이 자동으로 회계 시스템과 연동되어 감사 추적이 용이해집니다.
글로벌 사업을 진행하는 법인의 경우 크로스보더 결제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각 지사별로 하위 지갑을 설정하고, 본사가 정한 한도 내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하되 특정 금액 이상은 본사 승인을 받도록 설계할 수 있습니다. 암호화폐를 활용한 환전이나 관련한 해외 송금 수수료도 크게 절감할 수 있습니다.
기관투자자들에게는 디지털 자산 포트폴리오 관리에서 여러 가지 이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산운용사는 각 펀드별로 독립된 하위 지갑을 운영하면서도, 전체 포트폴리오를 통합 관리할 수 있습니다. 투자 한도나 리밸런싱 조건을 스마트하게 설정해 리스크 관리도 더욱 정교해집니다.
3. EIP-7702: 지갑의 혁신적인 변화와 새로운 가능성
3.1 EIP-7702 개요와 핵심 기능
이더리움의 새로운 업그레이드 EIP-7702는 2025년 펙트라 업그레이드를 통해 기존 지갑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을 전망입니다. 이 제안이 적용되면 EOA도 스마트 컨트랙트의 코드를 직접 실행할 수 있게 됩니다. 쉽게 말해 지금 쓰는 지갑을 그대로 두고도 스마트 계정의 강력한 기능들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게 되는 셈입니다.
EIP-7702의 핵심은 '위임 지정자(Delegation Designator)' 입니다. EOA가 특정 스마트 컨트랙트 주소를 지정하면, 그 컨트랙트의 기능을 자신의 것처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체인에서도 이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데, 체인별로 다른 기능을 설정하거나 모든 체인에서 동일한 기능을 사용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3.2 기본적인 작동 방식
EIP-7702가 작동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카카오톡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것처럼, EOA 지갑에도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게 됩니다.
먼저 지갑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을 선택합니다. 예를 들어 "100만 원 이상 이체할 때는 반드시 2명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는 "하루 이체 한도를 1,000만 원으로 제한한다"와 같은 기능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능이 담긴 스마트 컨트랙트 주소를 지갑에 등록하는데, 이것이 바로 '위임 지정자' 등록입니다.
등록이 완료되면 지갑은 마치 스마트폰에 새로운 앱을 설치한 것처럼 해당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모든 기능이 기존 지갑 안에서 그대로 동작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지갑을 만들 필요도 없고, 자산을 옮길 필요도 없습니다.
지갑 사용자는 언제든 이 기능들을 변경하거나 삭제할 수 있습니다. 마치 스마트폰에서 필요 없는 앱을 지우는 것처럼 간단합니다. 또한 여러 체인에서 각각 다른 기능을 설정할 수도 있고, 모든 체인에서 동일한 기능을 사용하도록 설정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기존 지갑 주소는 전혀 바뀌지 않습니다. NFT나 토큰 같은 디지털 자산도 그대로 유지되면서, 새로운 기능만 추가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스마트폰을 바꾸지 않고도 새로운 기능을 계속 추가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3.3 EIP-7702의 한계
EIP-7702는 기존 EOA에 스마트 계정의 기능을 더하는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만, 완벽한 해결책은 아닙니다. EOA를 진정한 의미의 스마트 계정으로 만들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개인키입니다. 아무리 다양한 보안 기능을 추가해도, 개인키만 있으면 이 모든 것을 무력화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집에 아무리 좋은 보안 시스템을 설치해도 마스터키가 있으면 무용지물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개인키가 유출되면 모든 자산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다중 서명 기능도 이 때문에 반쪽짜리가 됩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지갑을 관리하더라도, EOA 소유자 한 명이 개인키로 모든 것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중 서명 지갑의 핵심인 '공동 관리'라는 개념 자체가 형식적인 것에 그칠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계정 복구 문제도 있습니다. 일반 금융 서비스처럼 완벽한 복구 시스템을 구현할 수 없습니다. 개인키를 잃어버리면 결국 새로운 키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미래의 위협도 고민거리입니다. 양자 컴퓨터가 발전하면 현재의 개인키 시스템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국 언젠가는 완전히 새로운 보안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할 것입니다. 자금 보관이나 에스크로 기능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개인키 소유자가 언제든 자금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자금 잠금이나 제3자 보관 기능을 구현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한계들을 보면 EIP-7702는 완벽한 해결책이라기보다는 과도기적인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장 필요한 기능들은 사용할 수 있게 해주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4. 향후 전망과 과제
4.1 완전한 계정 추상화를 향해
EIP-7702는 이더리움의 계정 추상화 여정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는 시작일 뿐, 완전한 계정 추상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남아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EOA의 개인키는 여전히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어, 진정한 의미의 스마트 계정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더리움 재단과 개발자들은 이미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개인키의 권한을 완전히 비활성화하고 모든 계정을 스마트 계정으로 전환하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EIP-7702는 이 과정에서 사용자들이 스마트 계정의 이점을 점진적으로 경험하고 적응할 수 있게 해주는 가교 역할을 할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전환이 하루아침에 이뤄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수많은 기술적 과제들이 남아있고, 무엇보다 사용자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합니다. 특히 개인키라는 익숙한 보안 수단을 완전히 없애는 것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4.2 지갑 생태계의 변화
블록체인 생태계는 EIP-7702를 기점으로 큰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지갑 서비스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가 예상됩니다. 기존 지갑들은 단순히 개인키를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다양한 스마트 계정 기능을 제공하는 종합 자산 관리 플랫폼으로 진화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WaaS(Wallet-as-a-Service)와 임베디드 지갑의 성장도 더욱 가속화될 전망입니다. 이제 기업들은 자체 서비스에 지갑 기능을 손쉽게 통합할 수 있게 되고, 사용자들은 별도의 지갑 설치 없이도 웹3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EIP-7702의 위임 지정자 시스템은 이러한 임베디드 지갑에 강력한 기능을 더해줄 것으로 보입니다.
디앱 생태계도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복잡한 사용성 때문에 도입을 망설였던 기능들을 과감하게 시도해볼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게임에서는 세션 키를 활용해 더 자연스러운 플레이 경험을 제공할 수 있고, 디파이에서는 자동화된 투자 전략을 더 안전하게 구현할 수 있습니다.
기업들의 블록체인 도입도 더욱 가속화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업들이 블록체인 도입을 꺼렸던 이유 중 하나는 자금 관리의 어려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기존 금융 시스템처럼 체계적인 권한 관리와 자동화된 운영이 가능해져, 블록체인 기술을 실제 비즈니스에 적용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관투자자들을 위한 커스터디 서비스도 EIP-7702를 통해 한 단계 진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커스터디 제공자들은 기존의 콜드월렛 보관 서비스를 넘어, 기관 고객의 니즈에 맞는 맞춤형 스마트 계정 기능을 제공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거래소와 OTC 데스크에 특정 한도의 자금만 허용하고, 나머지는 항상 콜드월렛에 보관하도록 설정할 수 있습니다.
기존 금융 시스템과의 통합도 더욱 수월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ERP나 회계 시스템과 연동해 자동으로 거래 내역을 기록하고, 정기적인 감사를 위한 리포트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이는 디지털 자산을 기업 자산으로 관리할 때 필수적인 기능들입니다.
5. 결론
최근 한국에서는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를 단계적으로 허용하는 중요한 정책 변화가 있었습니다. 법집행기관, 지정기부금단체, 학교법인, 가상자산거래소 등을 시작으로 향후 궁극적으로는 모든 법인의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향후 내부 통제 기준과 자금세탁방지(AML) 규제에 맞는 새로운 디지털 자산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EIP-7702는 기업들에게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다중 서명이나 거래 한도 설정, 자동화된 감사 추적 등의 기능은 기업의 디지털 자산 관리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구사항들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WaaS 솔루션이나 임베디드 지갑 서비스와 결합하면, 기업들은 자체 시스템에 블록체인과 Web3를 더욱 효과적으로 통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EIP-7702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기업의 가상자산 보유가 본격화되면서 더 복잡한 규제와 요구사항들이 등장할 것이고, 이에 맞는 추가적인 기술 발전이 필요할 것입니다. 스테이블코인 규제나 증권형 토큰(STO) 관련 정책도 함께 정비되어야 하며, 기업들의 회계 및 세무 처리 기준도 명확히 정립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EOA에 스마트 계정의 기능을 더하는 이번 업그레이드는 의미가 있습니다. 기존 시스템을 급격히 바꾸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기능을 단계적으로 도입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EIP-7702가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사용자 경험의 혁신을 가져오겠지만, 여기에 더해 블록체인이 기업 환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