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L;DR]
- CBDC는 중앙은행의 통화 주권 유지, 스테이블코인은 민간의 효율적 거래 수단 제공이라는 상반된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다양한 사용자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한다.
- WaaS는 복잡한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자 친화적인 지갑으로 변환하여, CBDC와 스테이블코인 모두가 대중적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온보딩, 보안, 컴플라이언스 문제를 해결한다.
- 한국은 기술 인프라는 충분하지만 규제 방향이 미정인 상태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정책과 디지털 원화의 역할 정의가 향후 디지털 금융 생태계의 주도권을 결정할 것이다.
1. CBDC와 스테이블코인: 디지털 화폐의 두 갈래 길
1.1 두 체계의 근본적 차이 설정
디지털 화폐는 최근 몇 년간 금융 시스템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중앙은행들이 CBDC 개발을 추진하는 한편, 민간 기업들은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두 형태 모두 디지털 결제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발행 주체와 통제 메커니즘에서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는 각 국가의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고 관리하는 디지털 화폐입니다. 기존의 종이 화폐나 동전을 디지털 형태로 전환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한국은행이 개발 중인 디지털 원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연구 중인 디지털 달러, 중국이 이미 운영 중인 디지털 위안화가 이러한 형태에 해당합니다. CBDC는 법정화폐와 동일한 법적 지위를 가지며, 중앙은행의 신용과 정부의 강제성이 직접 뒷받침되기 때문에 사용자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기반 위에 거래할 수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은 이와 달리 민간 기업이나 탈중앙화 프로토콜이 발행하는 암호화폐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외부 자산으로 담보되는데, 미국 달러로 1:1 담보되는 유에스디씨나 유에스디티가 대표적입니다. 여러 자산 포트폴리오로 담보되는 다이 같은 스테이블코인도 존재하며, 이들은 모두 블록체인 위에서 움직이는 토큰 형태입니다. 따라서 암호화폐 생태계 내에서 거래 수단으로 주로 사용되며, 중앙은행의 개입이 없이 투명하게 운영됩니다.
이 두 시스템의 차이는 단순히 기술적 형태에 그치지 않습니다. CBDC는 통화정책의 새로운 도구가 될 수 있고, 금융 거래의 추적성을 높여 규제 당국의 감시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가 화폐 흐름을 전면적으로 통제할 수 있습니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가격 안정성을 제공함으로써, 기존 금융 시스템 밖에서의 거래를 가능하게 합니다. 같은 '디지털 화폐'라는 개념 아래 있지만, 지향하는 금융 구조와 가치관이 상당히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1.2 각각이 추구하는 목표와 시장에서의 역할 정의
CBDC 개발의 주된 목표는 기존 금융 체계의 현대화에 있습니다. 중앙은행들은 디지털 경제 시대에 법정화폐의 역할을 유지하기 위해 CBDC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종이 화폐의 발행량이 줄어들고 전자 결제가 일상화되는 추세 속에서,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를 통해 통화 공급의 중심성을 지키려는 전략입니다. 이는 기존의 중앙은행 체계가 미래 금융 시대에도 계속 유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CBDC는 금융 포용성 확대를 명목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은행 계좌가 없는 사람들도 중앙은행이 제공하는 디지털 지갑을 통해 금융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은행 인프라 구축의 대안으로 CBDC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으며, 국가 간 송금을 더 빠르고 저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도 CBDC 도입의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이렇게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국가 차원의 경제 목표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중앙은행들이 CBDC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이 추구하는 목표는 이와 정반대로 기존 금융 시스템과의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스테이블코인은 중앙 관리자 없이 투명한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을 장점으로 삼으며, 암호화폐 생태계 내에서 자산 거래, 스왑, 대출 같은 다양한 금융 활동의 기축통화 역할을 합니다. 기존 은행 시스템과 블록체인 시스템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함으로써, 탈중앙화 금융이라는 새로운 경제 구조의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시장에서의 역할은 구체적으로 달라집니다. CBDC는 기본적으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화폐이므로, 일상의 소액 결제부터 국가 간 송금까지 전 범위의 거래를 담당할 수 있습니다. 정책 당국이 통제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규제와 감시의 도구가 될 수 있으며, 이는 금융 안정성을 추구하는 중앙은행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기능입니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암호화폐 시장 내에서의 거래, 국제 송금, 그리고 기존 금융권의 규제를 피하고자 하는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블록체인 위의 거래이므로 속도가 빠르고 중간 기관을 거칠 필요가 없다는 강점이 있기 때문에, 신속성과 자유도를 원하는 사용자들의 선택이 되는 것입니다.
1.3 왜 동시에 존재하는지에 대한 배경 설명
CBDC와 스테이블코인이 동시에 존재하는 현상은 금융 시스템의 다층화를 의미합니다. 역사적으로 금융은 항상 중앙 집중식 구조였으며,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하고 상업은행들이 이를 매개로 거래를 중개했습니다. 그런데 블록체인 기술의 등장으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중앙 중개자 없이도 거래가 가능해졌고, 그 위에서 스테이블코인 같은 새로운 형태의 화폐가 출현한 것입니다. 이는 금융 체계 자체가 여러 층위로 분화되고 있다는 신호이며, 기존의 단일 구조로는 더 이상 시장의 모든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중앙은행들이 CBDC 개발에 서두르는 이유는 통화 주권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이 확산되면서 민간 기업이 사실상의 화폐를 발행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페이스북의 리브라(현 디엠) 프로젝트가 공표되었을 때 주요국 중앙은행들과 정치인들이 강하게 반발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직접 디지털 화폐를 제공함으로써 민간 스테이블코인의 역할을 제한하려는 의도가 있으며, 이는 국가 차원의 통화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시장의 수요는 CBDC와 스테이블코인 모두를 필요로 합니다. CBDC는 국가가 제공하는 안정성을 원하는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하며, 특히 금융 소외 계층이나 개발도상국의 사용자들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 화폐가 필요합니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빠른 국제 송금, 24시간 거래, 규제의 최소화를 원하는 사용자들의 수요를 충족시키며, 암호화폐 시장의 급속한 성장도 스테이블코인 수요를 계속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수요의 차이가 두 시스템이 공존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두 시스템의 공존은 금융 시장의 다양한 수요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규제된 안정성과 국가 신용을 원하는 쪽도 있고, 비규제 투명성과 신속성을 원하는 쪽도 있다는 뜻입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한국은행이 디지털 원화 개발을 진행 중인 한편 스테이블코인 규제 논의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이 명확해지면서, 두 체계가 공존하는 금융 생태계로의 전환이 진행 중인 것입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없었다면 CBDC 개발이 이토록 서두를 일이 없었을 것이고, 반대로 중앙은행들의 CBDC 개발이 없었다면 스테이블코인의 규제 논의도 덜 심각했을 것입니다. 두 시스템은 서로를 자극하면서 동시에 존재하게 된 것이며, 앞으로도 상호작용하며 발전할 것으로 보입니다.
2. CBDC의 구조와 현황: 중앙은행의 디지털 전략
2.1 주요국(한국, 미국, 유럽연합, 중국)의 CBDC 개발 현황
각 국가의 중앙은행들이 CBDC 개발에 착수한 시점과 진전 상황은 매우 다릅니다. 중국은 가장 적극적으로 CBDC를 추진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중국 인민은행이 개발한 디지털 위안화는 이미 2020년부터 선정된 도시들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했으며, 현재는 국내 거래뿐만 아니라 홍콩, 싱가포르, 태국 등 아시아 지역과의 국제 거래 연동까지 확대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디지털 위안화를 통해 국제 무역에서 위안화의 위상을 높이고,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 질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디지털 달러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기술적 안정성과 금융 시스템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습니다. 2023년과 2024년 연방준비제도가 발표한 보고서들은 디지털 달러의 잠재적 이점을 다루면서도, 소비자 프라이버시, 금융 안정성, 은행 시스템과의 관계 등 복잡한 정책 이슈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이미 달러가 국제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CBDC 도입의 긴급성이 다른 국가들보다 낮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중국과 미국의 중간 입장에서 CBDC 개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유럽중앙은행은 디지털 유로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추진 중이며, 2023년 말부터 본격적인 개발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유럽은 역내 금융통합과 국제 결제 시스템에서의 독립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으며, 디지털 유로를 통해 이러한 목표들을 달성하려고 합니다. 특히 개인정보 보호와 금융 포용성을 강조하면서 CBDC를 설계하고 있어, 다른 지역의 접근 방식과 차별화됩니다.
한국의 CBDC 개발은 한국은행이 주도하고 있으며, 기술적 검증 단계에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2020년부터 디지털 원화의 기본 설계와 기술 검증을 지속해왔으며, 국내 금융기관들과의 협력을 통해 실제 거래 환경에서의 가능성을 점검해왔습니다. 한국은 금융기술 인프라가 잘 발달되어 있고 국제 결제의 중요성이 높기 때문에, CBDC 도입 시 실질적인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국내 은행권과의 조화, 스테이블코인 규제와의 정합성 등 여러 정책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2.2 CBDC의 기술적 특성(오프라인 결제, 프로그래밍 기능 등)
CBDC의 기술적 구조는 기존 디지털 화폐와 구별되는 여러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오프라인 결제 기능은 CBDC의 주요 설계 요소입니다. 인터넷 연결이 불안정하거나 없는 환경에서도 거래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이는 금융 포용성을 추구하는 CBDC의 목표와 직결됩니다. 스마트카드나 모바일 기기의 칩 기반 기술을 활용하여 오프라인 상태에서도 가치 이전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기능은 특히 인터넷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프로그래밍 기능은 CBDC를 단순한 화폐 이상의 도구로 만드는 기술입니다. 이 기능을 통해 중앙은행은 특정 조건을 만족할 때만 화폐가 사용되도록 제한하거나, 특정 목적으로만 사용되도록 설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재정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한 달 내에 사용해야 하는 재난지원금을 CBDC로 지급한다면, 그 화폐는 지정된 기간 내에만 사용 가능하도록 프로그래밍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정부의 정책 수행 도구로서 CBDC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입니다.
중앙은행이 직접 관리하는 구조에서 나오는 거래 추적 기능도 CBDC의 중요한 특성입니다. 모든 거래 기록이 중앙은행에 남아 있기 때문에, 금융 감시와 규제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이는 자금세탁 방지, 테러 자금 추적, 탈세 적발 등 범죄 예방 차원에서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다만 이 기능은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를 낳기도 하며, 이를 어떻게 조절할지는 각 국가의 CBDC 설계에서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계층 구조는 CBDC 시스템의 또 다른 기술적 특징입니다. 일반적으로 CBDC는 소매용 CBDC와 도매용 CBDC로 나뉩니다. 소매용 CBDC는 일반 국민이 직접 사용하는 디지털 화폐이고, 도매용 CBDC는 금융기관들 간의 거액 거래에 사용됩니다. 도매용 CBDC는 이미 일부 국가에서 테스트 단계에 있으며, 국제 송금 효율화를 위한 중앙은행 간 협력 프로젝트에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계층 구조를 통해 CBDC는 소액 거래부터 국가 간 대규모 거래까지 금융 시스템 전체를 아우를 수 있게 됩니다.
2.3 통화정책과의 연계 가능성
CBDC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수행에 미칠 영향은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통화정책의 기본 도구인 기준금리 조정은 상업은행을 통한 간접적 경로로 작동합니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상업은행들이 대출 금리를 올리고, 이것이 시중의 신용 공급 수준을 조절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CBDC가 도입되면 중앙은행이 일반 국민의 CBDC 계좌에 직접 금리를 적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상업은행을 거치지 않고 통화정책의 효과를 직접 국민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하게 만듭니다. 현재 일부 선진국에서 시도되고 있는 마이너스 금리는 상업은행의 저항으로 인해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현금으로 돈을 인출하여 보관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CBDC 시대에는 현금이 없어지고, 모든 거래가 디지털화되며, 국민들이 마이너스 금리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중앙은행은 경제 침체 시에 더욱 강력한 완화 정책을 펼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정책 신속성도 향상될 수 있습니다. 현재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시중에 자금을 공급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상업은행을 통해 대출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단계의 심사와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CBDC가 도입되면 중앙은행이 국민의 CBDC 계좌에 직접 자금을 이전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경제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긴급 자금을 배분하기로 결정하면, CBDC를 통해 즉시 국민의 계좌에 입금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정책의 즉각성을 크게 높입니다.
다만 이러한 통화정책의 변화는 여러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금융 중개 기능의 약화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이 중앙은행 CBDC를 선호하게 되면 상업은행 예금이 감소하고, 이는 상업은행의 대출 기능을 제약하게 됩니다. 경제에 필요한 신용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금융 시스템 전체가 불안정해질 수 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여러 국가들은 CBDC 보유 규모에 상한선을 두거나, CBDC와 상업은행 예금 간의 금리 차를 유지하는 정책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민의 금융 자산이 모두 중앙은행에 집중되면서 금융 감시의 강화와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3.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민간이 만드는 디지털 화폐
3.1 스테이블코인의 다양한 종류(담보 기반, 알고리즘 등)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안정성을 유지하는 방식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뉩니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법정화폐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입니다. 이 방식은 발행사가 스테이블코인 1개당 미국 달러 1개를 보유하고 있다는 원칙에 기반합니다. USDC와 USDT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며, 이들은 블록체인 위에서 달러로 담보된 토큰 형태로 거래됩니다. 사용자는 스테이블코인을 달러로 언제든 환전할 수 있다는 확실성이 있기 때문에, 암호화폐 시장에서 가장 높은 신뢰도를 얻고 있습니다. 다만 이 방식의 안정성은 발행사의 투명성과 적절한 담보 관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암호화폐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 대신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다른 암호화폐로 담보되는 방식입니다. DAI가 가장 유명한 사례이며, 스카이라는 탈중앙화 프로토콜이 관리합니다. 사용자들이 담보로 암호화폐를 예치하면, 그에 해당하는 양의 DAI를 발행받을 수 있습니다. 이 방식의 장점은 발행사의 신용에 의존하지 않고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완전히 투명하게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담보 비율이 항상 공개되고, 스마트 컨트랙트에 의해 자동으로 관리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담보로 사용되는 암호화폐의 가격이 급락하면 시스템 전체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위험이 있습니다.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담보 자산 없이 순전히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가격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의 공급량을 자동으로 조절함으로써 가격을 목표 수준에 맞춥니다. 수요가 증가하면 자동으로 공급을 늘리고, 수요가 감소하면 공급을 줄이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이론적으로는 담보 자산이 필요 없기 때문에 매우 효율적이지만, 실제로는 시장 신뢰도가 무너지면 시스템 전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극심한 위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테라의 루나와 UST라는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이 2022년에 급락하면서 수많은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혔던 사건이 이러한 위험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이브리드형 스테이블코인은 위의 방식들을 조합하는 형태입니다. 부분적으로 법정화폐로 담보하고, 나머지 부분은 암호화폐나 알고리즘으로 보완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각 방식의 장점을 취하면서 단점을 보완하려는 시도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스테이블코인이 80퍼센트는 미국 달러로 담보하고, 20퍼센트는 암호화폐로 담보한다면, 법정화폐 담보형의 안정성과 암호화폐 담보형의 투명성을 동시에 얻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방식은 관리가 복잡해지고, 여러 담보 자산 간의 가격 변동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3.2 주요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와 발행사들
USDC는 서클이라는 미국 회사가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입니다. 미국 달러로 1:1 담보되며, 이더리움, 솔라나, 폴리곤 등 여러 블록체인에서 발행되고 있습니다. 서클은 높은 투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산 보유 현황을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있으며, 규제 당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USDC는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스테이블코인 중 하나이며, 기관투자자들도 신뢰하는 자산이 되었습니다.
USDT는 테더사가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높은 거래량을 가지고 있으며,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거의 모든 주요 블록체인에서 거래 가능합니다. 다만 테더사는 자산 투명성 문제로 지속적인 논란이 있어왔습니다. 보유 자산이 실제로 미국 달러인지, 아니면 다른 자산으로 대체되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으며, 이는 USDT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의 지배력은 여전히 상당합니다.
DAI는 스카이가 관리하는 암호화폐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입니다. 이더리움을 주로 담보로 사용하며, 모든 거래가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투명하게 기록됩니다. 스카이는 탈중앙화 자치 조직 형태로 운영되므로, 중앙의 회사가 없고 토큰 보유자들의 투표로 정책이 결정됩니다. 이는 완전한 투명성과 민주적 운영을 추구하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의 철학을 대표합니다. 다만 이더리움의 가격 변동에 민감하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페이팔 USD 같은 새로운 스테이블코인들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페이팔은 2023년 자체 스테이블코인인 PYUSD를 출시하였으며, 이는 기존 결제 플랫폼의 사용자 기반을 활용하려는 시도입니다. 이런 주요 기업들의 참여는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암호화폐 생태계를 벗어나 일상의 결제 수단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이는 기존 금융 기관들이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진출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3.3 한국 시장에서의 스테이블코인 현황과 규제 이슈
한국의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글로벌 시장과는 다른 특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USDT와 USDC가 국내 거래소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고 있지만, 한국 거주자들이 직접 발행사와 거래할 수 없다는 규제 제약이 있습니다. 다만 거래소를 통한 간접 거래는 가능한 상황입니다.
흥미롭게도 최근 한국 시장에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제는 아직 명확한 법적 틀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출현은 여전히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스테이블코인을 전자금융감시법의 대상으로 규제할 것인지, 아니면 암호화폐로 분류할 것인지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발행사가 실제로 원화 담보를 보유하고 있는지 감시하기 위해서는 금융권과의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만약 비인가 기업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마음대로 발행한다면, 사실상의 화폐를 민간이 발행하는 것이 되어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스테이블코인의 급속한 확산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이 실질적인 결제 수단으로 확대되면 기존 금융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3년 이후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규제 논의가 진전되면서, 한국도 이에 맞춰 자체 규제 방안을 마련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등장을 시기적절하게 규제하기 위해, 사전에 법적 기준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의 담보 자산이 적절하게 관리되는지, 발행사의 투명성이 보장되는지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보입니다.
대형 거래소들의 현황을 보면, 업비트, 빗썸, 코인원 등 국내 주요 거래소들이 모두 USDT와 USDC를 거래 가능한 자산으로 등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암호화폐 시장에서 필수적인 기축통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거래소 차원에서는 스테이블코인 수요가 매우 높으며, 이를 제한할 경우 시장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발행의 스테이블코인은 아직 등장하지 않은 상황인데, 이는 규제 불확실성과 원화 스테이블코인 출범의 정책적 난제 때문입니다. 만약 한국 기업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다면 금융감독 당국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 하며, 높은 수준의 투명성과 안전성을 입증해야 합니다.
한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이슈는 CBDC 개발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디지털 원화를 개발하고 있는 과정에서, 민간 스테이블코인의 역할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가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되었습니다. 만약 스테이블코인이 광범위하게 확대되면, 디지털 원화의 필요성이 감소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CBDC가 성공적으로 도입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역할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CBDC와 스테이블코인의 역할 분담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특히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정책 방향이 한국의 디지털 금융 생태계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4. WaaS: 디지털 화폐 시대의 필수 인프라
4.1 WaaS의 정의와 필요성(CBDC, 스테이블코인 모두에 필요)
WaaS는 Wallet-as-a-Service의 약자로, 지갑 기능을 서비스 형태로 제공하는 기술 솔루션입니다. 블록체인 위에서 암호화폐나 디지털 자산을 보유하고 관리하려면 개인키(Private Key)를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일반 사용자들에게는 매우 복잡합니다. WaaS는 이러한 복잡성을 기업이나 플랫폼이 대신 처리해주는 방식입니다. 개인키 관리, 거래 서명, 보안 등 모든 기술적 세부사항을 WaaS 제공자가 담당하고, 사용자는 간단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자산을 송수신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CBDC가 도입되었다고 해도, 이를 실제로 국민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면 사용자 친화적인 지갑 인터페이스가 필요합니다. 모든 국민이 복잡한 기술을 이해하고 개인키를 관리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WaaS 기술을 활용하면, 중앙은행은 CBDC의 핵심 기능에 집중하고, 사용자 경험과 지갑 관리는 전문 기업들에게 위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CBDC의 채택률을 높이고, 실제 거래 현장에서의 활용을 촉진합니다.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을 거래하려는 사용자들도 매우 다양합니다. 개인 투자자부터 기관투자자까지 각 사용자 그룹의 필요에 맞춘 지갑 솔루션이 필요하며, 이를 제공하는 것이 WaaS입니다. 개인 투자자는 모바일 지갑을 통해 간편하게 스테이블코인을 거래하고, 기관투자자는 고수준의 보안과 컴플라이언스가 적용된 엔터프라이즈 지갑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온보딩 프로세스의 단순화로 인해 CBDC와 스테이블코인의 확산 속도가 크게 달라집니다. 기존 암호화폐 지갑을 만드는 과정은 개인키 생성, 백업, 보관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용자들이 개인키를 잃어버리거나 보안 문제로 자산을 도난당했습니다. WaaS를 사용하면 사용자는 단순히 이메일과 비밀번호로 계정을 만들고 즉시 디지털 자산을 거래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일반 은행 계좌를 개설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편의성을 제공하므로, CBDC와 스테이블코인의 대중적 확산에 필수적입니다.
4.2 WaaS가 해결하는 구체적 문제들(온보딩, 보안, 컴플라이언스)
온보딩 단순화는 WaaS가 해결하는 첫 번째 문제입니다. 전통적인 암호화폐 지갑은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들에게 진입 장벽이 매우 높았습니다. 개인키를 기억해야 하고, 이를 안전한 곳에 보관해야 하며, 분실 시 복구할 수 없다는 점이 사용자들을 두려워하게 만들었습니다. WaaS는 중앙화된 서버에서 개인키를 관리하므로, 사용자는 단순한 로그인 정보만으로 계좌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경우에도 기존 은행처럼 비밀번호 재설정 기능을 통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는 CBDC 도입 초기 단계에서 일반 국민의 참여를 확대하는 데 결정적입니다.
보안 문제는 개인 사용자가 암호화폐를 직접 관리할 때 발생하는 심각한 위험입니다. 악성코드 감염, 피싱 공격, 하드웨어 지갑 분실 등 수많은 보안 위협이 있습니다. WaaS 제공자는 은행 수준의 보안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며, 24시간 모니터링과 침입 탐지 시스템을 운영합니다. 또한 다중 서명(Multi-Signature) 기술을 적용하여 거래 승인 시 여러 단계의 검증을 거치도록 설계합니다. 이러한 전문화된 보안 체계는 개인 사용자가 달성하기 어려운 수준의 안전성을 제공하며, 사용자들의 신뢰도를 크게 높입니다. 특히 기관투자자들은 대규모 자산을 관리할 때 이러한 보안 수준이 필수적이므로, WaaS 없이는 기관의 참여가 어렵습니다.
규제 준수(컴플라이언스)는 WaaS가 처리해야 하는 복잡한 요구사항입니다. CBDC와 스테이블코인이 실제로 금융 시스템에 통합되려면 각 국가의 규제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자금세탁 방지(AML), 테러 자금 추적(CFT), 고객 확인(KYC) 등 복잡한 규제 의무가 있습니다. WaaS 제공자는 이러한 모든 규제 요건을 자신의 플랫폼에 구현하고, 사용자 정보를 관리하며, 의심 거래를 보고합니다. 개별 사용자가 이러한 규제 의무를 직접 처리할 수 없으므로, WaaS 제공자가 중간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CBDC와 스테이블코인도 기존 금융권과 동일한 수준의 규제 감시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4.3 WaaS 기반 디지털 화폐 서비스의 실제 작동 방식
사용자가 모바일 앱에서 스테이블코인 송금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WaaS의 작동 방식이 드러납니다. 사용자는 받는 사람의 주소와 금액을 입력하고 생체 인증(지문이나 얼굴 인식)으로 거래를 승인합니다. 이 순간 WaaS 서버는 사용자의 개인키를 사용하여 블록체인 거래에 서명을 하고, 이를 네트워크에 브로드캐스트합니다. 블록체인 위에서 거래가 처리되고 완료되면, WaaS 앱은 사용자에게 거래 완료 알림을 보냅니다. 이 전체 과정이 수 초 내에 이루어지며, 사용자는 블록체인의 기술적 복잡성을 전혀 의식하지 않습니다. 마치 일반 뱅킹 앱을 사용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디지털 자산을 거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관투자자를 위한 WaaS는 훨씬 복잡한 기능을 제공합니다. 은행이나 대규모 거래소가 대량의 CBDC나 스테이블코인을 관리해야 할 때, 단순한 모바일 지갑으로는 불충분합니다. WaaS 제공자들은 API 기반의 엔터프라이즈 솔루션을 제공하여, 금융기관의 기존 시스템과 통합될 수 있도록 합니다. 예를 들어 국제 송금을 처리하는 은행은 WaaS API를 통해 자동으로 스테이블코인으로 환전하고, 글로벌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해 송금하며, 수령국에서 다시 법정화폐로 환전하는 전체 과정을 자동화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WaaS는 각 단계의 규제 요건 충족, 환율 조정, 수수료 관리 등을 모두 처리합니다.
CBDC 도입 시나리오에서 WaaS의 역할은 중앙은행과 민간 기업 사이의 연결고리가 됩니다. 중앙은행은 디지털 원화를 발행하고 CBDC 기본 네트워크를 운영하면, 민간 금융기관과 WaaS 제공자들이 그 위에서 다양한 지갑과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은행은 기존 고객들을 위해 CBDC 지갑을 앱에 통합하고, 스핀테크 기업들은 청소년이나 MZ세대를 위한 트렌디한 CBDC 지갑을 만듭니다. 소매점들은 WaaS를 통해 CBDC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제 송금 기업들은 CBDC를 활용한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합니다. 중앙은행은 기본 인프라만 제공하고, 사용자 경험과 서비스 혁신은 민간에게 맡기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생태계에서 WaaS는 여러 블록체인과 자산을 통합하는 플랫폼으로 작동합니다. 동남아시아의 송금 업체가 해외 근로자들의 국제 송금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가정하면, WaaS를 통해 여러 블록체인에서 발행된 스테이블코인(USDC, USDT 등)을 동시에 관리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가 어떤 스테이블코인을 받든, WaaS가 자동으로 최적의 환율과 최소 수수료로 처리합니다. 받는 사람이 원할 경우 스테이블코인을 현지 법정화폐로 즉시 환전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복잡한 거래 흐름이 모두 WaaS 기술으로 뒷받침되며, 사용자는 단순한 앱 인터페이스만 사용하면 됩니다. WaaS는 결국 디지털 화폐가 정말로 '화폐'로서 작동하기 위해 필수적인 기반 기술이며, CBDC와 스테이블코인이 동시에 번영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합니다.
5. 규제 환경과 미래 시나리오
5.1 CBDC 도입에 따른 규제 방향
CBDC가 실제로 도입되면 중앙은행의 규제 권한이 크게 확대됩니다. 현재 금융감독은 주로 상업은행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CBDC 시대에는 중앙은행이 국민의 거래를 직접 추적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통화정책 수행의 정밀도를 높인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제 침체 상황에서 정부가 특정 집단에 긴급 자금을 지급할 때, CBDC를 통해 그 자금이 실제로 소비에 사용되는지, 아니면 저축되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이너스 금리 정책도 더 효과적으로 시행할 수 있으므로, 금융정책의 도구가 훨씬 강력해지는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개인정보 보호 규제와 충돌하게 됩니다. 모든 거래가 중앙은행에 기록되면, 국민의 구매 패턴, 이동 경로, 거래 상대방 등이 모두 파악될 수 있습니다. 이는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를 낳으며, 규제 당국과 시민 사회 간의 긴장이 높아집니다. 이를 조절하기 위해 많은 국가들은 CBDC의 익명성 수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CBDC 사용자에게 일정 수준의 익명 거래를 보장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중국은 추적성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설계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 두 입장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고민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디지털 원화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기업 규제도 새로운 차원이 됩니다. 현재 금융감독은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 전통적인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CBDC 시대에는 지갑을 제공하는 스핀테크 기업, 결제 플랫폼, 심지어 소매점까지도 금융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WaaS 제공자들이 CBDC 거래를 중개하면, 이들도 금융기관 수준의 규제와 감시를 받아야 합니다. 이는 기존의 규제 체계를 완전히 재정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각 국가의 금융당국은 CBDC 시대에 어떤 기업들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새로운 규범을 만들고 있습니다.
국제 거래 규제도 CBDC 도입으로 인해 변하게 됩니다. 현재 국제 송금은 스위프트(SWIFT)라는 국제 결제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 과정에서 여러 중개은행을 거칩니다. CBDC가 도입되면 중앙은행들 간의 직접 거래가 가능해지므로, 국제 송금 시간이 크게 단축될 수 있습니다. 동시에 각 국가의 통제력도 강화되는데, 이는 자본통제와 환전 제한이 더 효과적으로 시행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경제 제재 상황에서 특정 국가의 자산을 동결하는 것도 CBDC를 통해 더 빠르게 시행할 수 있습니다.
5.2 스테이블코인 규제의 국제적 흐름과 한국의 입장
글로벌 차원에서 스테이블코인 규제는 빠르게 진전되고 있습니다. 국제금융안정위원회(FSB)는 2023년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권고안을 발표했으며, 이는 각 국가의 규제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주요 내용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은행 수준의 자본 적절성 기준을 충족하고, 담보 자산을 투명하게 관리하며, 규제 당국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스테이블코인이 광범위하게 채택될 경우 금융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미국, 유럽, 영국 등 주요국들은 이러한 국제 기준을 자국의 규제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방향은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권을 은행과 일부 금융기관으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있으며, 비금융 기업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금지하는 법안들이 의회에 제출되어 있습니다. 이는 페이팔, 아마존 같은 거대 기업들이 독자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것을 사실상 차단하려는 의도입니다. 다만 완전한 규제보다는 감시 체계 구축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블록체인 기술 자체는 규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유럽연합은 MiCA(Markets in Crypto-Assets Regulation)라는 포괄적인 암호화폐 규제 법안을 2024년부터 시행하고 있으며, 여기서 스테이블코인도 엄격한 규제 대상입니다.
한국의 입장은 글로벌 기준과의 조화 속에서 자국의 디지털 금융 전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규제는 한국 정부의 가장 복잡한 정책 과제입니다. 글로벌 스테이블코인(USDT, USDC 등)은 거래소를 통한 간접 거래만 허용되는 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국내 발행이므로 더욱 엄격한 규제가 필요합니다. 금융위원회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사가 은행이나 금융투자회사여야 하고, 원화 담보를 100퍼센트 보유해야 한다는 원칙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또한 발행 규모에 대한 상한선을 두는 것도 논의 중입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신용화폐처럼 무제한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한국의 규제 전략은 CBDC와 스테이블코인 사이의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하려는 의도를 보여줍니다. 정부는 CBDC가 일상적인 소액 거래와 국민 대상 서비스의 중심이 되기를 원하며, 스테이블코인은 암호화폐 시장 내에서의 거래나 국제 송금 같은 보조적 역할을 하길 원합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과도하게 확대되면 CBDC의 필요성이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규제 흐름에 뒤쳐지지 않으면서, 한국 금융 시장의 특성과 기술 수준에 맞는 규제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금융투자회사, 은행, 스핀테크 기업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조율해야 하므로, 규제 방안의 수립이 오래 걸리고 있습니다.
5.3 CBDC와 스테이블코인이 공존하는 미래 금융 구조
CBDC와 스테이블코인이 동시에 발전하는 미래를 구상할 때, 계층화된 금융 생태계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초 계층에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CBDC가 있고, 이는 금융 안정성과 국가 신용으로 뒷받침됩니다. 그 위에는 글로벌 스테이블코인(USDC, USDT 등)이 있으며, 이들은 국제 거래와 암호화폐 시장에서의 기축통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지역별 스테이블코인도 등장할 것입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유로 스테이블코인, 위안화 스테이블코인 등이 각 지역의 거래 효율성을 높이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러한 다층 구조는 단일한 글로벌 통화가 모든 거래를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각 화폐가 자신의 역할에 최적화되는 형태입니다.
국제 거래의 구조도 크게 변할 것입니다. 현재는 미국 달러를 중심으로 모든 거래가 이루어지지만, 미래에는 CBDC와 스테이블코인의 결합으로 더욱 다양한 결제 경로가 생깁니다. 한국의 수출업체가 일본에 상품을 수출할 때, 현재는 달러로 결제받고 원화로 환전합니다. 미래에는 디지털 위안화와 디지털 엔이 직접 거래되고, 스테이블코인이 임시 거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달러의 독주 체제를 약화시키고, 여러 통화가 경쟁하는 구조를 만듭니다. 동시에 국제 거래의 속도와 효율성을 크게 높입니다.
민간 기업들의 역할도 새로워집니다. WaaS 제공자들은 이러한 다양한 화폐들을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이 됩니다. 사용자는 하나의 앱에서 디지털 원화, USDC, DAI, 원화 스테이블코인 등을 모두 관리하고, 최적의 거래 경로를 자동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은행들은 CBDC를 기반으로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개발합니다. 전자지갑에 머니마켓 기능을 더하거나, CBDC 기반의 자동 송금 서비스를 만들거나, 스마트 계약을 활용한 조건부 결제 같은 새로운 상품들이 나타납니다.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더 이상 변동성 큰 코인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CBDC와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합니다.
금융 포용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될 것입니다. CBDC와 WaaS의 조합으로 인해 은행 계좌가 없는 사람들도 디지털 금융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의 농부가 스마트폰만 있어도 국제 송금을 받을 수 있고, 이를 글로벌 스테이블코인으로 저축하거나 필요에 따라 현지 화폐로 환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금융 시스템의 경계를 허물고, 보다 포용적인 세계 경제를 만듭니다. 동시에 국가별로 규제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CBDC가 널리 채택된 국가와 스테이블코인 중심의 국가 사이에 규제 차이가 생길 것입니다. 이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 간 금융 경쟁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6. 결론: 디지털 화폐 인프라 경쟁
CBDC와 스테이블코인의 등장은 금융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두 체계는 서로 다른 철학과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결국 같은 디지털 화폐 생태계 속에서 공존하게 될 것입니다. 중앙은행이 국가 신용을 바탕으로 CBDC를 추진하는 이유는 통화 주권을 유지하기 위함이고, 민간 기업들이 스테이블코인을 개발하는 이유는 효율적인 거래 수단을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이 두 가지 수요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상호 보완적입니다.
WaaS는 이러한 디지털 화폐 생태계가 실제로 작동하는 데 필수적인 기반 기술입니다. CBDC가 아무리 혁신적으로 설계되어도, 국민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지갑이 없다면 채택 속도는 더딜 것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이 아무리 투명하게 관리되어도, 사용자 경험이 좋지 않다면 거래량이 제한될 것입니다. WaaS는 이러한 기술과 사용자 경험 사이의 간격을 좁혀주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CBDC와 스테이블코인의 미래는 결국 WaaS 기술의 발전 정도에 크게 좌우될 것입니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기술 인프라는 충분하지만, 규제 방향이 아직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CBDC 개발, 스테이블코인 규제, WaaS 기업 육성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한국이 글로벌 디지털 금융 경쟁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도, 아니면 수동적으로 따라갈 수도 있습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 디지털 원화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WaaS 기업들에게 어떤 자유도를 줄 것인지에 대한 결정이 중요합니다. 향후 몇 년간 한국의 정책 결정이 국내 디지털 금융 생태계의 모습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