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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에이전트 시대의 결제 인프라: x402 프로토콜 분석

2025-11-25

[TL;DR]

  • x402는 1996년 정의된 HTTP 402 코드를 실제로 구현한 프로토콜로, AI 에이전트가 인간 개입 없이 0.01달러 수준의 소액을 200ms 안에 결제할 수 있게 한다.
  • 구글 AP2(승인), 비자 TAP(신원), 스트라이프 ACP(레거시 통합) 등 다른 프로토콜과 상호 보완하며, x402는 크립토 네이티브 결제 실행을 담당하는 에이전트 커머스 스택의 정산 레이어 역할을 한다.
  • 현재는 베이스+USDC+코인베이스 퍼실리테이터 중심으로 중앙화되어 있지만, 진정한 웹 표준이 되려면 멀티체인 지원과 탈중앙화 퍼실리테이터 생태계 구축이라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1. AI가 바꾸고 있는 인터넷 경제

1.1 콘텐츠는 소비되지만 돈은 안 들어온다

인터넷은 지난 30년간 두 가지 방식으로 돈을 벌어왔습니다. 사람들이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광고가 노출되고, 그 광고 수익으로 콘텐츠 제작자가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또는 넷플릭스처럼 월 정액을 내면 무제한으로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구독 모델을 선택했습니다. 광고와 구독이라는 이 두 축이 디지털 경제를 지탱해온 구조입니다.

그런데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이 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AI 에이전트는 사람처럼 웹을 탐색하지만, 광고를 보지 않습니다. 챗지피티가 뉴스 기사 내용을 읽을 때 배너 광고를 클릭하지 않고, 구독 모델도 소용이 없습니다. AI는 한 달 구독권을 끊지 않고 필요한 정보만 추출해서 사용자에게 요약해줍니다. 인터넷의 주 소비자가 인간에서 기계로 바뀌면서, 기존 수익 구조가 작동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개발자가 무료 날씨 데이터 API를 운영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원래는 하루 수백 건의 요청을 처리하던 이 API를 AI 에이전트들이 발견하면, 시간당 수백만 건을 쿼리하게 됩니다. 서버 비용은 폭증하지만 수익은 전혀 없습니다. 개발자는 결국 API를 닫거나 유료화를 고민해야 합니다. 콘텐츠는 소비되지만 창작자는 보상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 문제는 저널리즘이나 예술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뉴욕타임즈가 오픈AI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가장 눈에 띄는 사례일 뿐이고, 진짜 문제는 웹 자체의 설계에 있습니다. 인터넷은 정보를 교환하도록 만들어졌지, 가치를 교환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 창작자는 파산하고, AI는 학습할 새로운 콘텐츠를 찾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AI가 생성한 콘텐츠를 AI가 다시 학습하는 악순환만 남게 됩니다.

1.2 HTTP 402, 30년 만의 귀환

1996년 HTTP/1.1 표준이 공개됐을 때, 흥미로운 상태 코드 하나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402 Payment Required입니다. 서버가 클라이언트에게 "이 리소스는 결제가 필요합니다"라고 알리는 코드였습니다. 404(페이지를 찾을 수 없음)나 500(서버 오류)처럼 널리 알려진 코드는 아니지만, 웹 표준 문서 어딘가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코드가 30년 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실패한 이유는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표준 자체가 불완전했습니다. 402 코드는 "결제가 필요하다"는 사실만 알릴 뿐, 어떻게 결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은 정의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닭과 달걀 문제가 있었습니다. 클라이언트 개발자는 지원하는 서버가 없어서 구현하지 않았고, 서버 개발자는 지불할 수 있는 클라이언트가 없어서 구현하지 않았습니다.

셋째, 가장 결정적으로 결제 인프라가 소액 결제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기존 결제 시스템은 한 건당 최소 30센트 이상의 고정 비용이 들었습니다. 신용카드 수수료는 보통 결제 금액의 2.9%에 30센트를 더한 구조입니다. 1달러짜리 콘텐츠를 팔면 33센트가 수수료로 나갑니다. 0.1달러나 0.01달러를 받으려 하면 수수료가 결제 금액보다 많아집니다. 이런 구조에서 소액 결제는 처음부터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시도됐던 소액 결제 시스템들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사람들은 웹 페이지 하나 볼 때마다 돈을 내는 것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작은 금액이라도 결제할 때마다 "이게 돈 낼 가치가 있나?" 고민해야 하는 심리적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콘텐츠 제공자들은 결국 광고나 구독으로 돌아갔고, 402 코드는 표준 문서 속에서 잊혔습니다.

1.3 2025년,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다

2025년 들어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코인베이스와 클라우드플레어가 x402 재단을 설립하며 30년간 잠들어 있던 402 코드를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이것이 갑자기 가능해진 이유는 세 가지 핵심 기술이 동시에 성숙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스테이블코인입니다. 비트코인은 가격 변동이 심해서 일상적인 결제 수단으로 쓰기 어려웠습니다. 오늘 1달러였던 것이 내일 0.8달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반면 USDC 같은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에 1:1로 고정되어 있어서 가격이 안정적입니다. 디지털 화폐면서도 실제 돈처럼 예측 가능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긴 것입니다.

두 번째는 레이어2 블록체인입니다. 이더리움 메인넷은 느리고 비쌌습니다. 거래 하나에 몇 달러씩 수수료가 나갈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베이스 같은 L2 네트워크는 여러 거래를 묶어서 처리한 뒤 메인넷에 최종 결과만 기록하는 방식을 씁니다. 덕분에 거래 수수료가 0.0001달러 수준으로 떨어졌고, 처리 시간도 0.2초에서 2초 사이로 단축됐습니다. 신용카드가 며칠씩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세 번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변화는 AI 에이전트의 등장입니다. 과거 소액 결제가 실패한 근본 이유는 사람들이 작은 결제를 반복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AI에게는 이런 심리적 부담이 없습니다. 0.01달러를 내든 100달러를 내든 AI는 그저 프로그램된 대로 실행할 뿐입니다. 짜증도, 망설임도, 피로도 없습니다. 기술적 장벽과 심리적 장벽이 동시에 사라진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2025년에 한꺼번에 맞아떨어지면서, 30년 전에 상상했던 웹의 네이티브 결제가 드디어 현실이 됐습니다.

2. x402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2.1 기계 간 핸드셰이크

x402는 본질적으로 결제 협상 프로토콜입니다. 웹사이트를 방문할 때 브라우저와 서버가 HTTP로 대화하듯이, x402는 그 대화 안에 결제 과정을 끼워 넣습니다. 복잡한 블록체인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존 HTTP 요청과 응답 구조에 결제 정보를 주고받는 단계만 추가한 것입니다.

이 프로토콜이 작동하려면 네 개의 참여자가 필요합니다. 먼저 클라이언트는 리소스를 요청하는 쪽으로, AI 에이전트나 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다음으로 리소스 서버는 API나 웹사이트처럼 유료 콘텐츠를 제공하는 쪽입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웹 구조와 같습니다. 하지만 x402에는 두 참여자가 더 있는데, 퍼실리테이터는 웹2와 웹3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며, 블록체인은 실제로 돈이 움직이는 최종 정산 레이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설계 선택이 하나 있습니다. 리소스 서버는 블록체인을 직접 건드리지 않습니다. 일반 웹 개발자가 노드를 운영하거나 스마트 컨트랙트를 다룰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대신 퍼실리테이터가 그 복잡한 부분을 대신 처리합니다. 서버는 그저 "이 결제가 맞는지 확인해줘"라고 퍼실리테이터에게 물어보기만 하면 됩니다. 이런 구조 덕분에 기존 웹 인프라에 x402를 통합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간단해집니다.

2.2 결제가 이뤄지는 과정

실제 결제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살펴봅시다. AI 리서치 어시스턴스가 유료 논문 데이터베이스에서 최신 반도체 연구 논문을 읽으려는 상황을 예로 들겠습니다.

AI 어시스턴스는 논문 데이터베이스에 논문을 요청합니다. 이 시점에서는 돈을 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데이터베이스 서버는 402 상태로 응답하면서 결제 조건을 알려줍니다. "이 논문은 0.03 USDC입니다. 베이스 네트워크로 이 주소에 보내주세요"라는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마치 서점에서 책값을 확인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제 AI의 지갑이 움직입니다. "0.03 USDC를 지불하겠다"는 서명을 만들어냅니다. 이 서명은 약속이자 동시에 증명입니다. AI는 같은 논문을 다시 요청하는데, 이번에는 방금 만든 결제 서명을 함께 보냅니다.

여기서 중요한 일이 일어납니다. 논문 데이터베이스는 받은 결제 정보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 퍼실리테이터에게 넘깁니다. 퍼실리테이터는 서명이 진짜인지, 금액이 맞는지, 이미 사용한 결제는 아닌지 확인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블록체인에 돈을 보내면, 몇 초 안에 정산이 끝납니다. 베이스 같은 빠른 네트워크에서는 2초도 안 걸립니다.

모든 것이 마무리됩니다. 데이터베이스는 요청했던 논문을 보내주고, 결제 영수증도 함께 첨부합니다. AI는 논문을 받았고, 논문 제공자는 0.03달러를 받았으며, 모든 거래가 블록체인에 투명하게 기록됩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그저 2~3초 정도 기다렸을 뿐입니다.

2.3 설계 철학

x402의 설계에는 몇 가지 명확한 원칙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서버가 블록체인을 직접 다루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의도적인 선택입니다. 대부분의 웹 개발자는 블록체인 전문가가 아닙니다. 노드를 운영하거나 가스비를 계산하거나 프라이빗 키를 관리하는 일은 진입 장벽이 높습니다. 퍼실리테이터가 이 복잡한 부분을 전담하면서, 일반 개발자는 REST API 호출 몇 번으로 x402를 통합할 수 있게 됩니다.

두 번째 원칙은 비수탁형(Non-custodial) 구조입니다. 퍼실리테이터는 절대로 자금을 보관하지 않습니다. 클라이언트의 지갑에서 서버의 지갑으로 바로 이동하는 구조이며, 퍼실리테이터는 그 과정을 중개할 뿐입니다. 마치 택배 기사가 물건을 옮기되 절대 그 물건의 주인이 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 구조 덕분에 자금이 중간에서 빼돌려지거나 묶일 위험이 없습니다.

세 번째는 차지백이 없는 세계입니다. 신용카드는 결제 후 최대 120일까지 거래를 취소할 수 있습니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언제든 돈이 다시 빠져나갈 수 있다는 뜻이고, 이것이 사기의 온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블록체인 트랜잭션은 일단 확정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서버는 결제가 확인되는 순간 그 돈이 확실히 자신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소액 결제에서 특히 중요한데, 0.01달러를 받고 나중에 차지백으로 0.01달러를 잃으면서 수수료까지 내야 한다면 비즈니스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x402는 체인 중립, 자산 중립을 지향합니다. 현재 구현체는 베이스 네트워크와 USDC를 주로 사용하지만, 프로토콜 자체는 어떤 블록체인, 어떤 토큰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솔라나를 쓸 수도 있고, 폴리곤을 쓸 수도 있으며, 심지어 미래에는 신용카드나 은행 계좌를 통한 결제도 퍼실리테이터를 통해 통합할 수 있습니다. 이 유연성이 x402를 특정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는 진짜 웹 표준으로 만들어줍니다.

3. 에이전트 커머스 스택

3.1 함께 만드는 에이전트 경제 인프라

x402를 이해하려면 더 큰 그림을 봐야 합니다. 2025년 들어 글로벌 기술 기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비슷한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AI 에이전트가 자율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이 질문에 대해 각 기업은 서로 다른 조각을 붙잡았고, 그 조각들이 모여서 에이전트 커머스 스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구글은 AP2(Agent Payments Protocol)를 제안했습니다. 이 프로토콜은 결제 자체보다 승인 문제에 집중합니다. AI가 돈을 쓸 때, 그것이 정말 사용자의 의도를 반영한 것인지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AP2는 사용자가 AI에게 부여한 권한을 검증 가능한 형태로 표현하는 방법을 정의합니다. 예를 들어 "이 AI는 하루 10달러까지, 뉴스 구독과 데이터 API에만 쓸 수 있다"는 식의 세밀한 규칙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스트라이프와 오픈AI는 ACP(Agentic Commerce Protocol)를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이들이 풀려는 문제는 기존 전자상거래와의 통합입니다. 현재 인터넷에는 수백만 개의 온라인 쇼핑몰이 있고, 대부분은 사람이 폼을 채우고 카드 정보를 입력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ACP는 AI가 자연어 명령을 받아서 이런 기존 체크아웃 프로세스를 자동으로 탐색하고 완료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마치 AI를 위한 자동 결제 도우미 같은 역할입니다.

비자는 TAP(Trusted Agent Protocol)을 들고 나왔습니다. 비자가 집중하는 것은 신원 문제입니다. 서버 입장에서는 요청을 보내는 AI가 진짜 정당한 에이전트인지, 악의적인 봇은 아닌지 구별해야 합니다. TAP는 검증 가능한 자격증명(Verifiable Credentials)을 활용해서 AI에게 일종의 디지털 신분증을 부여합니다. 이를 통해 서버는 "이 에이전트는 신뢰할 수 있는 사용자를 대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명 KYA(Know Your Agent) 문제를 푸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전 스트라이프 엔지니어들이 만든 ATXP(Agent Transaction Protocol)는 API 함수 단위의 결제에 집중합니다. AI 에이전트가 외부 API를 호출할 때, 각 함수 호출마다 가격을 책정하고 자동으로 결제하는 메커니즘입니다. MCP 서버 같은 에이전트 프레임워크 안에서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x402보다 한층 더 세밀한 단위로 내려갑니다.

3.2 x402의 고유한 역할

이 모든 프로토콜 속에서 x402는 어디에 위치할까요? x402는 승인도, 신원도, 기존 시스템 통합도 아닙니다. x402의 역할은 정확히 하나입니다. 결제 실행입니다. 다른 프로토콜이 "누가, 왜, 어디서"를 다룬다면, x402는 "어떻게 돈이 실제로 움직이는가"를 다룹니다.

구체적인 흐름을 상상해보겠습니다. 사용자가 AI 어시스턴트에게 "최근 반도체 산업 동향 보고서 찾아줘"라고 요청합니다. AI는 유료 리서치 데이터베이스를 발견하고, 보고서 하나를 구매하기로 결정합니다. 이 순간 여러 프로토콜이 연쇄적으로 작동합니다. 먼저 AP2가 "이 AI는 리서치 자료 구매 권한이 있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다음으로 TAP이 "이 AI는 검증된 사용자를 대리하고 있다"는 신원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x402가 "0.50 USDC를 베이스 네트워크로 전송한다"는 실제 결제를 실행합니다.

이렇게 보면 x402는 에이전트 커머스 스택에서 정산 레이어를 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승인과 신원 확인이 끝나면, 그 다음은 x402의 영역입니다. 프로토콜의 402 응답이 나가고, 클라이언트가 서명된 결제를 보내고, 퍼실리테이터가 온체인에 트랜잭션을 올리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돈이 실제로 이동하는 순간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프로토콜들이 서로 경쟁 관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상호 보완적입니다. AP2로 권한을 확인하고, TAP로 신원을 증명하고, x402로 결제를 실행하고, ACP로 기존 쇼핑몰 결제도 처리하는 식으로 함께 작동합니다. 각각이 퍼즐의 한 조각이고, 모두가 갖춰져야 완전한 그림이 나옵니다.

실제로 클라우드플레어는 자사의 에이전트 플랫폼에서 x402와 ATXP를 모두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개발자는 상황에 따라 적합한 프로토콜을 선택하면 됩니다. 웹 리소스 전반에 대한 결제라면 x402가 적합하고, 특정 함수 호출에 대한 과금이라면 ATXP가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개방형 생태계라는 점입니다. 한 회사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프로토콜이 자유롭게 조합되고 발전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결국 x402의 강점은 바로 이 명확한 역할 정의에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지 않고, "크립토 네이티브 결제 실행"이라는 한 가지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다른 프로토콜들이 처리하는 승인, 신원, 통합 문제는 그들에게 맡깁니다. 이런 모듈화된 접근 방식이야말로 웹 표준이 발전해온 방식이고, x402가 진짜 인터넷 표준이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4. 달라지는 인터넷 비즈니스

4.1 진정한 마이크로페이먼트

x402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소액 결제의 경제학을 바꿨다는 점입니다. 0.01달러짜리 거래가 실제로 수익이 나는 구조가 된 것입니다. 이전까지 신용카드로 0.01달러를 받으려면 30센트의 고정 수수료에 추가로 2.9%가 붙었습니다. 수수료가 결제 금액의 30배가 넘으니 누구도 이런 가격을 매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x402는 베이스 같은 L2 네트워크에서 0.0001달러 수준의 수수료만 냅니다. 0.01달러를 받으면 0.0099달러가 실제 수익이 됩니다.

이 차이가 만드는 변화는 단순히 작은 금액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이상입니다. 종량제가 부활한다는 의미입니다. 과거에는 API 요청 한 번에 0.001달러를 받는 것이 불가능해서, 월 구독 모델로 가거나 아예 무료로 풀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사용한 만큼만 내는 구조가 가능합니다. 사용자는 100번 쓰면 0.1달러만 내면 되고, 10,000번 쓰면 10달러를 냅니다. 쓰지 않으면 0원입니다.

기존 결제 시스템과 x402를 표로 비교하면 그 차이가 명확해집니다. 신용카드는 거래당 평균 0.30달러에 2.9%를 더하고, 정산은 며칠이 걸리며, 최대 120일까지 차지백 리스크가 있습니다. 이론적 처리 용량은 초당 6만 5천 건 정도입니다. 페이팔도 비슷하게 3% 이상의 수수료에 정산은 빠르지만 역시 차지백이 있습니다. 스트라이프의 크립토 결제 옵션은 1.5% 이상의 수수료가 들고, 블록체인에 따라 속도가 달라집니다.

반면 x402는 베이스 네트워크에서 사실상 무료입니다. 가스비가 0.0001달러도 안 되는 수준이고, 정산은 200밀리초면 끝나며, 차지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처리 용량은 초당 수백에서 수천 건까지 확장 가능합니다. 이더리움 L1과 비교해도 압도적인데, L1은 거래 하나에 1~5달러씩 가스비가 들고 확정까지 12분이 걸립니다. x402는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장점을 가져오면서도, L2 기술로 속도와 비용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4.2 실제 사용 사례

이론은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어떻게 쓰일까요? 가장 명확한 사례는 AI 에이전트의 자율 구매입니다. 연구 보조 AI가 사용자의 질문에 답하려고 학술 논문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합니다. 유료 논문 하나가 0.03달러입니다. AI는 x402로 자동으로 결제하고 논문을 다운로드해서 요약해줍니다. 사용자는 논문을 구매했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 있습니다. 그저 AI가 답변을 잘 해줬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주식 거래 봇은 실시간 시장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분 단위 데이터는 무료지만, 초 단위 데이터는 요청당 0.02달러입니다. 봇은 중요한 거래 기회를 포착했을 때만 초 단위 데이터를 구매합니다. 한 달에 500번 구매하면 10달러를 쓰는데, 월 구독료가 100달러인 서비스보다 90달러를 아낍니다. 반대로 고빈도 트레이딩 봇은 수만 번 구매해서 월 200달러를 쓸 수도 있습니다. 각자 필요한 만큼만 쓰는 구조입니다.

GPU 리소스도 마찬가지입니다. AI 모델 학습을 위해 클라우드 GPU를 빌리는데, 분당 0.50달러입니다. 전통적인 클라우드 서비스는 시간 단위로 끊기거나 최소 사용 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x402 기반 서비스는 정말로 분 단위로 끊을 수 있습니다. 3분 쓰면 1.50달러, 50분 쓰면 25달러입니다. 리소스를 쓰는 순간마다 결제가 일어나고, 필요 없으면 바로 끊습니다.

콘텐츠 언번들링도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뉴욕타임즈 기사 하나를 읽는 데 0.25달러입니다. 한 달에 10개 기사를 읽으면 2.50달러인데, 월 구독료가 20달러라면 대부분의 사용자에게는 기사별 결제가 더 합리적입니다. 물론 매일 30개씩 읽는 헤비 유저는 구독이 나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선택권입니다. 구독을 강요하지 않고, 원하는 만큼만 사는 옵션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팟캐스트는 에피소드당 0.50달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광고 없는 버전으로 들을 수 있고, 크리에이터는 직접 수익을 얻습니다. 광고 수익은 플랫폼과 나눠 가져야 하지만, x402 결제는 온전히 크리에이터의 지갑으로 들어옵니다.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형 패키지 구매나 광고 시청 대신, 플레이당 0.10달러를 받는 모델이 가능합니다. 한 번 해보고 재미없으면 0.10달러만 쓴 것이고, 100번 하면 10달러를 쓴 것입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Agent-to-Agent 경제입니다. 사용자의 범용 AI 어시스턴트(제너럴리스트)가 복잡한 작업을 받습니다. "이 세 개 탈중앙화 거래소에서 최적의 차익거래 기회를 찾아줘." 제너럴리스트 AI는 각 거래소 전문가인 세 개의 스페셜리스트 AI를 각각 고용합니다. 각 스페셜리스트에게 0.25달러씩 지불하고, 그들이 준 정보를 종합해서 사용자에게 답변합니다. 사람은 한 번도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AI가 AI를 고용하고, AI가 AI에게 돈을 지불했습니다. 이것이 진짜 자율 경제입니다.

4.3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

이런 사용 사례들이 모이면 인터넷 경제의 구조 자체가 바뀝니다. 구독 피로 현상이 줄어듭니다. 현재 평균적인 소비자는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뉴욕타임즈, 유튜브 프리미엄, 클라우드 스토리지 등 수십 개의 구독을 관리합니다. 매달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돈이 수백 달러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중 일부만 열심히 씁니다. x402가 활성화되면 정말 쓰는 것만 돈을 냅니다. 구독과 종량제를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광고 의존도도 줄어듭니다. 지금은 무료 서비스를 유지하려면 광고를 붙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x402로 기사당 0.05달러를 받을 수 있다면, 광고 없이도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사용자는 깔끔한 경험을 얻고, 크리에이터는 직접적인 수익을 얻습니다. 광고 플랫폼이 가져가던 중간 마진도 사라집니다.

창작자 직접 수익화는 더욱 민주화됩니다. 대형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고도 콘텐츠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개인 블로거가 x402를 붙이면, 글 하나당 0.10달러씩 받을 수 있습니다. 한 달에 1,000명이 읽으면 100달러입니다. 플랫폼 수수료 30%를 떼지 않고, 온전히 100달러를 받습니다.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서 롱테일 크리에이터들이 생존 가능해집니다.

5. 누가 지갑을 관리할 것인가

5.1 x402의 실제 병목

x402 프로토콜은 우아합니다. HTTP 402 응답을 보내고, 클라이언트가 서명된 결제를 첨부해서 재요청하고, 퍼실리테이터가 검증하고, 블록체인에 정산됩니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것을 사용하려면 한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AI 에이전트가 지갑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지갑을 가진다는 것은 단순히 주소 하나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프라이빗 키를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고, 그 키로 트랜잭션에 서명할 수 있어야 하며, 충분한 잔액이 있어야 하고, 가스비도 처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도 어려운 일인데, AI 에이전트는 어떻게 할까요? 더 근본적으로는, AI에게 돈을 맡긴다는 것 자체가 안전할까요?

이 문제는 세 가지 차원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사용자 경험입니다. 일반 소비자가 챗지피티 같은 AI 서비스를 쓰려고 하는데, "먼저 메타마스크를 설치하고, 크립토 거래소에서 USDC를 구매하고, 지갑으로 전송하세요"라고 하면 대부분은 그냥 떠납니다. 크립토 온보딩은 여전히 높은 장벽입니다. 두 번째는 AI 권한입니다. AI에게 얼마나 자율성을 줄 것인가? 하루 한도는? 어떤 종류의 서비스에만 쓸 수 있는가? 이런 규칙을 누가, 어떻게 강제할 것인가? 세 번째는 개발자 통합입니다. x402를 지원하는 API를 만드는 개발자가 블록체인 전문가가 아니라면, 사용자의 지갑을 어떻게 관리해줄 것인가?

결국 x402가 성공하려면 지갑 관리를 쉽게 만드는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프로토콜은 표준이고,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은 구현체입니다. 바로 여기서 다양한 지갑 솔루션들이 등장합니다.

5.2 지갑 솔루션 카테고리

지갑 문제를 푸는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에 따라 다른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크게 네 가지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임베디드 월렛(Embedded Wallets)**는 소셜 로그인으로 자동 생성되는 지갑입니다. 사용자가 구글이나 애플 계정으로 AI 서비스에 가입하면, 백엔드에서 자동으로 지갑이 만들어집니다. 사용자는 지갑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신용카드로 10달러를 충전하면 서비스가 알아서 USDC로 바꿔서 지갑에 넣어줍니다. AI가 x402로 뭔가를 구매할 때마다 이 지갑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갑니다. 사용자는 대시보드에서 "오늘 0.45달러 사용"이라는 알림만 봅니다. 크립토라는 단어조차 등장하지 않습니다.

**커스터디얼 월렛(Custodial Wallets)**는 서비스 제공자가 키를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코인베이스나 바이낸스 같은 거래소 지갑이 대표적입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가장 간단합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있으면 되고, 키를 잃어버릴 걱정도 없습니다. 하지만 탈중앙화 원칙에서는 멀어집니다. 거래소가 해킹당하거나 파산하면 자금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반 소비자 대상 서비스에서는 여전히 가장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스마트 컨트랙트 월렛(Smart Contract Wallets)**는 일반 지갑이 아니라 스마트 컨트랙트로 구현된 지갑입니다. ERC-4337 같은 계정 추상화 표준을 따릅니다. 이 지갑의 강점은 프로그래밍 가능한 규칙입니다. "이 AI는 하루 10달러까지만", "API X, Y, Z에만 지불 가능", "1달러 이상 거래는 사람의 승인 필요" 같은 조건을 코드로 박아넣을 수 있습니다. AI 에이전트에게 제한된 권한만 부여하고 싶을 때 최적입니다. KITE AI의 Agent Passport가 이 방식을 사용하는데, AI에게 일종의 디지털 여권을 발급하고 그 안에 지출 한도와 권한을 명시합니다.

**셀프 커스터디 월렛(Self-Custody Wallets)**는 사용자가 직접 설치하고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메타마스크, 코인베이스 월렛, 팬텀 같은 브라우저 확장 지갑이 여기 속합니다. 사용자가 프라이빗 키를 직접 보관하고, 모든 트랜잭션을 수동으로 승인합니다. 완전한 통제권을 가지지만, x402의 "자동화" 철학과는 다소 충돌합니다. 크립토 네이티브 유저들은 이 방식을 선호하지만, 일반 사용자에게는 부담스럽습니다.

5.3 WaaS (Wallet-as-a-Service)의 역할

이 모든 지갑 솔루션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셀프 커스터디 월렛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WaaS(Wallet-as-a-Service)**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WaaS는 개발자가 API로 지갑 기능을 이용하는 서비스입니다. 직접 블록체인 노드를 운영하거나, 키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멀티체인 통합을 개발할 필요가 없습니다.

임베디드 월렛도 WaaS입니다. 커스터디얼 월렛도 WaaS입니다. 스마트 컨트랙트 월렛도 WaaS 형태로 쓸 수 있습니다. 즉, WaaS는 카테고리이고, 그 안에 여러 구현 방식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발자는 createWallet() API를 호출하면 지갑이 생기고, signTransaction() API를 호출하면 서명이 나옵니다. 뒤에서 어떤 암호학적 마법이 일어나는지 알 필요가 없습니다.

x402와 WaaS의 관계를 비유하자면, x402는 언어이고 WaaS는 발성 기관입니다. 프로토콜이 "이렇게 결제하자"고 정의했다면, WaaS는 "실제로 결제를 실행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코인베이스 WaaS는 x402 퍼실리테이터와 같은 회사 제품이라 통합이 매끄럽습니다.

개발자는 한 곳에서 지갑 생성부터 결제 검증까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서클의 프로그래머블 월렛은 규제 받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제공하는 WaaS라서 금융 규제가 중요한 기업에 적합합니다. 파이어블록스나 턴키 같은 MPC 기반 WaaS는 대규모 자금을 다루는 기관이 선호합니다.

중요한 것은 x402 프로토콜 자체는 지갑 구현 방식에 의견이 없다는 점입니다. 어떤 WaaS를 쓰든, 어떤 지갑 방식을 쓰든, 프로토콜은 똑같이 작동합니다. 이 유연성이야말로 개방형 표준의 힘입니다. 개발자는 자신의 상황에 맞는 지갑 솔루션을 선택하고, x402는 그 위에서 결제 레이어로 작동합니다. 퍼즐 조각을 자유롭게 조립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6. 어떤 인터넷을 만들 것인가

6.1 현재 상태: 중앙화된 부트스트랩

x402를 둘러싼 논의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비판은 현재 실제로 작동하는 시스템이 지나치게 중앙화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론적으로 x402는 체인 중립, 자산 중립을 표방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돌아가는 걸 보면 USDC 스테이블코인을 베이스 네트워크에서 사용하고, 코인베이스 퍼실리테이터가 정산을 처리합니다. 세 가지 모두 코인베이스와 밀접하게 연관된 스택입니다. 베이스는 코인베이스가 인큐베이팅한 L2 네트워크고, USDC는 코인베이스가 주요 파트너인 서클이 발행하며, 퍼실리테이터는 코인베이스가 직접 운영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비판적으로 보면 x402는 개방형 표준을 표방하지만 실상은 코인베이스 생태계로의 온보딩 통로입니다. 사용자를 베이스 네트워크로 끌어들이고, USDC 사용을 늘리고, 코인베이스 인프라에 의존하게 만드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발자가 x402를 도입하면 자연스럽게 코인베이스 제품군을 쓰게 되는 구조입니다. 이것이 정말 중립적인 웹 표준이 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다르게 볼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표준을 시작할 때는 언제나 부트스트랩 문제가 있습니다. 닭과 달걀 문제를 깨려면 누군가는 먼저 투자하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합니다. 코인베이스는 단일 스택을 제공함으로써 개발자의 진입 장벽을 극적으로 낮췄습니다. 개발자는 멀티체인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어떤 퍼실리테이터를 쓸지 선택하지 않아도 되며, 그냥 코인베이스 문서를 따라하면 됩니다. 이 단순함이 초기 채택을 이끌어냅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웹 표준이 비슷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HTTP도 처음에는 특정 서버 소프트웨어에서 시작했고, 점차 다양한 서버와 클라이언트로 확산됐습니다. 중요한 것은 프로토콜 자체가 개방되어 있는가입니다. x402 명세는 공개되어 있고, 누구나 퍼실리테이터를 만들 수 있으며, 어떤 블록체인이든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중앙화는 영구적 설계가 아니라 실용적 첫걸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6.2 x402의 주요 과제들

중앙화 문제를 넘어서, x402가 진짜 인터넷 표준이 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여럿 있습니다.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은 채택과 네트워크 효과입니다. 프로토콜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곳에서 쓰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x402를 지원하는 웹사이트는 극소수입니다. 대부분의 API는 여전히 API 키와 구독 모델을 씁니다. AI 에이전트 개발자들도 아직은 실험 단계입니다. 생태계가 임계 질량에 도달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과거 유사한 시도들이 실패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W3C의 웹 머니타이제이션 표준은 기술적으로는 괜찮았지만, 충분한 퍼블리셔와 브라우저의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소수의 얼리어답터만 쓰다가 사라졌습니다. x402가 이 함정을 피하려면 킬러 유즈케이스가 필요한데, AI 에이전트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 지켜봐야 합니다.

채택 문제와 맞물려 있는 것이 지갑 보안과 사용자 경험입니다. 앞 챕터에서 다뤘지만, 지갑 문제는 여전히 해결 중입니다. 일반 사용자가 AI 서비스를 쓰기 위해 크립토 지갑을 만들고 USDC를 구매하는 것은 여전히 높은 장벽입니다. WaaS 솔루션들이 이를 추상화하려 하지만, 완벽하지 않습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AI에게 지출 권한을 준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보안 문제를 만듭니다. AI가 해킹당하거나 버그가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사용자가 설정한 한도를 AI가 우회할 방법을 스스로 찾아낸다면요? 이런 우려가 해소되지 않으면 대중적 채택은 어렵습니다.

동시에 표준 경쟁과 파편화 리스크도 커지고 있습니다. x402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글의 AP2, 스트라이프의 ACP, 비자의 TAP, 그리고 ATXP까지, 여러 프로토콜이 동시에 제안되고 있습니다. 이들이 서로 보완적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경쟁 관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구글이 크롬 브라우저에 AP2를 기본 탑재하고, 애플이 사파리에 자체 프로토콜을 넣는다면요? 개발자는 여러 표준을 모두 지원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됩니다. 웹 표준의 역사는 이런 파편화가 얼마나 골치 아픈지 보여줍니다.

x402 재단은 이를 막기 위해 중립적 거버넌스를 강조합니다. 코인베이스뿐 아니라 클라우드플레어, 비자, 구글 같은 다양한 플레이어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다른 회사들이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여러 프로토콜이 난립하고, 결국 큰 플랫폼들이 자기 생태계 안에서만 작동하는 폐쇄적 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기술적으로는 확장성 문제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현재는 x402 트랜잭션이 적어서 문제가 안 되지만, 만약 성공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수백만 개의 AI 에이전트가 초당 수천만 건의 마이크로페이먼트를 발생시킨다면, 베이스 네트워크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L2 네트워크는 L1보다 빠르지만 무한정 확장되지는 않습니다. 배치 정산이나 페이먼트 채널 같은 추가 최적화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퍼실리테이터 서버도 병목이 될 수 있습니다. 검증과 정산 요청이 폭증하면 지연이 발생하고, 사용자 경험이 나빠집니다.

이 모든 기술적, 경제적 문제 위에 규제 불확실성이 얹혀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과 크립토 결제는 여전히 규제 당국의 관심 대상입니다. 각국의 규제가 다르고, 언제 바뀔지 모릅니다. 퍼실리테이터는 송금 라이선스가 필요할 수 있고, 일부 국가에서는 스테이블코인 사용 자체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x402가 글로벌 표준이 되려면 이런 규제 장벽을 넘어야 하는데, 단일 회사나 재단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정부와의 협력, 로비, 법률 자문 등 기술 이외의 많은 작업이 필요합니다.

6.3 앞으로 나아갈 방향

이런 과제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x402 생태계는 명확한 로드맵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진정한 멀티체인 지원입니다. 현재는 베이스 중심이지만, 솔라나, 폴리곤, 아비트럼 같은 다른 L2들로 확장해야 합니다. 개발자가 자기 서비스에 맞는 체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클라이언트도 선호하는 체인으로 결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퍼실리테이터가 여러 체인을 지원하고, 프로토콜 명세가 체인별 차이를 우아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멀티체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탈중앙화 멀티 퍼실리테이터 생태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코인베이스 퍼실리테이터만 있는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 누구나 퍼실리테이터를 운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발자는 여러 퍼실리테이터 중 선택하거나, 심지어 자체 퍼실리테이터를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단일 실패 지점이 사라지고, 검열 저항성이 생기며, 진짜 탈중앙화된 시스템이 됩니다. 이미 페이AI 네트워크나 x402.rs 같은 서드파티 퍼실리테이터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긍정적 신호입니다.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고급 결제 스킴의 도입도 필요합니다. 현재 x402는 단순한 "요청당 결제" 모델입니다. 하지만 실제 사용 사례는 더 복잡합니다. "최대 금액까지" 지불하는 방식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트리밍 서비스를 쓰는데 "최대 5달러까지 쓸게, 그 안에서 알아서 시간 계산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는 "지연 정산" 기능도 유용합니다. AI가 웹을 크롤링하면서 수천 페이지를 방문하는데, 매번 즉시 결제하는 대신 하루 종료 시점에 한 번에 정산하는 것입니다. 클라우드플레어가 제안한 방식인데, 이런 유연성이 추가되면 더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가능해집니다.

결국 x402의 미래는 얼마나 빨리 탈중앙화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의 중앙화된 시작은 실용적이지만, 영구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진짜 웹 표준이 되려면, HTTP처럼 누구도 소유하지 않고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x402는 AI 시대 인터넷의 결제 레이어가 될 것입니다. 실패한다면, 코인베이스의 흥미로운 실험 정도로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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